폭군님은 착하게 살고 싶어 6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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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온, 내 말을 믿어줘. 나는 줄리아를 죽이라고 명령한 적도 없고 줄리아가 어디 있는지도 알지 못했어!”

도로테아는 테온의 앞에 무릎을 꿇으며 무죄를 애걸했다.
그런 도로테아를 보며 테온이 주먹을 꽉 쥐더니 턱을 부서질 듯 다물었다.
그가 울고 있었다.
그의 눈물이 뺨을 흘러내려 도로테아의 무릎으로 떨어졌다.

“울지 마, 테온. 제발…….”

줄리아 때문에 울지 마.
나를 원망하며 울지 마.
도로테아는 차라리 테온이 자신을 때리기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테온은 입을 다문 채 울다가 원망의 눈빛을 남기고는 떠나 버렸다.
그리고 도로테아의 죄는 곧 증명됐다.

“테온……?”

늦은 저녁, 도로테아가 자신의 외로운 침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긴 그림자가 침대 위로 드리워 있었다.
캐노피에서부터 뚝 떨어진 형체.
도로테아는 순간 매달려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인지하지 못했다.
거뭇한 그림자, 사람? 아니야. 저건…….
사실을 의심했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리고 그 형체가 테온임을 확신하는 순간 정신을 잃었다.
그녀가 다시 깨어났을 땐 에단이 곁에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본 것이 불면과 같은 악몽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폐하…….”

악몽이 아니었다.
그것을 알아차린 순간 도로테아는 그 자리에서 구토했다.
에단이 의사를 불렀지만 소용없었다.
도로테아를 치료할 방법은, 테온이 살아나는 것뿐이니까.
그 후 도로테아는 잠을 한숨도 자지 못했다.
내가 죽였어. 나 때문에 죽었어.
테온이 나 때문에.
눈을 감는 것이 두려워졌고, 강한 수면제조차도 점점 듣지 않았다.

잠을 자는 것보다 실신하거나 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져 정신을 잃는 일이 더 많아졌다.
그때마다 도로테아는 꿈에서 제 손으로 죽인 이들을 만났다.
가장 먼저 레이먼드가 찾아왔고, 그다음은 줄리아가, 마지막으로는 테온이 찾아왔다.
어느 날엔 초상화로만 보았던 어머니도 찾아와 울며 그녀의 목을 졸랐다.

이따금은 아버지인 카르넌도 그녀를 찾아왔다. 빛의 정령들도 그녀를 비난하듯 멀어지면 도로테아는 어둠 속에서 절규하다가 깨어났다.
에단은 그런 도로테아의 곁을 지키며 속삭였다.

“폐하. 폐하의 잘못이 아닙니다.”

거짓말. 너무나 입에 발린 거짓말.
처음부터 끝까지 내 잘못이야!

“폐하께선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높으신 황제입니다. 무얼 두려워하십니까? 제가 폐하의 곁에 있습니다.”

에단은 허황된 메아리를 계속해서 속삭였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 거울에 비친 이 초췌하고 더러운 여인이?
세상에서 가장 높아? 결국 아무것도 갖지 못한 내가?
도로테아는 그의 모든 말에 환멸을 느꼈다.

그녀는 국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국정만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중단된 궁전 건설에 대한 임금 지불에도 신경 쓰지 못했으며, 그녀에게 아부하는 이들에게 훌륭한 대가를 내어주지도 못했다.
도로테아는 그즈음부터 죽음까지 자신이 뭘 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순간순간을 기억하는 일조차 고통스러워서 쉽게 잊었고, 모든 것을 쉽게 흘려보냈다.

무능한 폭군을 향한 반란이 일어난 것은 테온이 죽고 불과 석 달 뒤.
백성들도 귀족들도 한마음 한뜻으로 도로테아를 욕하며 궁전으로 몰려왔다.
그리고 그들보다 한발 앞서, 에단이 찾아왔다.

“국서의 자리를 제게 주시지 않으면, 제가 황제가 될 겁니다.”

그는 마지막 거래를 제안했다.
아아, 국서의 자리. 그게 비어 있지. 예전부터 네가 원했던 그 자리.
그 말이 테온이 죽었다는 것을 다시 상기시켰다.

“마음대로 해……. 그 자리는 못 주니까.”

테온을 그렇게 죽게 해놓고 에단에게 그 자리를 주라고?
도로테아는 절대 그럴 수 없었다.
그러자 에단이 입술을 파르르 떨며 분노했다.

“대체……. 대체 그 남자가 뭐길래 이렇게까지 하시는 겁니까!”

에단의 물음에 도로시는 흐릿하게 떠올렸다.

“테온은…….”

도로테아가 입술을 연 채 가만히 머물렀다.
뭐였을까.
나의 첫사랑이었고, 약혼자였고, 남편이었고, 끝사랑이었으며…… 아마도 유일하게 내가 갖지 못한 것이겠지.
결혼으로 가졌다고 생각했지만, 끝까지 그는 줄리아의 것이었고 그것이 나의 욕심을 더 건드린 것일지도.

도로테아는 늘 갖고 싶은 것을 가져야만 직성이 풀렸고, 가지지 못한 것을 갈망했으니까.
그녀가 갖지 못한 레이의 물건을 탐했듯이.
그녀에게 허락되지 않은 황위를 갈망했듯이.
그녀는 갖지 못할 테온을 끝없이 욕망했다.
그래. 온갖 욕망과 정념과 감정의 집합체가 테온이었고, 그녀의 사랑이었다.
그러므로.

“테온은…… 나 그 자체야.”

욕심 많은 도로테아를 투영하는 완벽한 거울.
버리려고 해도 버릴 수 없는 나 자신.
사랑, 증오, 설렘, 미련, 기쁨, 슬픔, 행복과 고통.
도로테아가 가졌던 모든 감정이 오롯이 담긴 대상.
테온 없이는 도로테아 밀라네어를 설명할 수 없다.
그러자 대답을 들은 에단의 표정이 알 수 없게 일그러지더니 곧 넋이 나간 사람처럼 웃었다.

“하, 하하…… 하하하!”

도로테아는 그런 에단을 초점 없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에단의 웃음은 한참 지속된 후에야 잦아들었다.

“좋아요. 당신의 선택이 이거라면…… 저 또한 그에 따르겠습니다.”

“…….”

“후회하지 마세요.”

도로테아는 언젠가 그 말을 누군가에게서 들었던 것 같았다.
후회하지 않길 바란다고, 누가 말했더라?
그때 도로테아는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했다.
그리고 지금은…… 후회할 여력조차 남지 않았다.
도로테아는 두렵지 않았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아무렇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다음에 벌어진 것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에단을 따르던 신하와 장군들이 도로테아를 끌어냈고, 폭도들이 성을 불태웠다.

그제야 도로테아는 마음이 개운해졌다.
그녀는 자신이 가졌던 것들이 불타는 것을 보며 미친 듯이 웃었다.
폭군을 잡으러 온 자들이 그녀의 옷을 찢어 벗기고 채찍질하며 밧줄로 묶어 광장으로 데려갔다.

황제 앞에 꽃비와 축포 대신 오물과 돌멩이가 던져졌다.
날아오는 욕설은 너무 많아서 뭐라 하는지 들리지도 않게 왱왱거렸다.
그 길을 걷는 도로테아의 곁엔, 아무도, 레이먼드도, 테온도, 에단도 없었다.
그녀가 사는 동안 벌어진 모든 나쁜 일이 그녀의 죄가 되었다.

전염병이나 메뚜기 떼, 에단이 죽였던 성주들의 살인죄, 델레바인 가문의 몰살과 그녀도 몰랐던 엄청난 비리와 죄목들이 도로테아 밀라네어를 죄의 바다에 담갔다.

‘내가 잘한 게 하나라도 있던가?’

누굴 탓하고 싶지 않았다.
맞아. 내가 폭군이야.
황제라면 이 나라에서 벌어진 모든 불행에 책임이 있고, 그녀는 너무 많은 이를 불행하게 만들었다. 그녀 자신까지도.
내가 하지 않은 짓이지만, 그것은 모두 내가 한 짓이야.
내가 테온을 죽였어.
내가 모두를 죽이고 나라를 망쳤어!

빛의 정령도 못 부리는 주제에, 선황의 유언까지 어겼지!
도로테아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렇게나 어리석은 인생이라니!
채찍질도 돌팔매질도 이젠 아픈 줄도 몰랐다.
그리고 처형대 아래까지 도달했을 때, 도로테아는 에단을 발견했다.

“마지막 기횝니다.”

처형대에 오르기 전 그는 마지막으로 도로테아와 독대했다.

“…….”

도로테아는 오물을 뒤집어쓴 초라한 모습으로 손이 묶여 있었다.
한때는 나의 죽음이 찬란할 것이라 생각하던 때가 있었는데.
온 제국의 백성이 슬퍼하고 깨끗한 수의가 입혀져 아름다운 관에 들어가는 몸.
나를 위한 헌화가 관을 덮고, 비장한 장송곡이 흐르고, 향내가 가득한.

테온의 곁에 나란히 묻혀 그럴듯한 비문이 새겨지는 그런 죽음.
아니면 차라리 레이먼드와 싸울 때 죽었더라면, 아니야. 아니야.
이젠 어떤 죽음도 무의미했다.

“제가…… 제가 국서가 되는 것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에단이 이를 꽈악 깨물며 말을 삼켰다.
재상으로서 하얀 예복을 갖추어 입은 에단의 손에는 황제를 상징하는 정령의 지팡이가 들려 있었다.
그 모습은 아주 새삼스럽게도, 아름다웠다.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도 유독 또렷하게.

“살려달라…… 그 한마디만 하세요.”

“…….”

“그 말 한마디만 하면, 그간의 정리를 봐서 어떻게든 살려 드릴 테니…… 말씀하세요.”

에단이 오물 냄새가 나는 도로테아에게 다가와 말했다.
그에게선 언제나 향긋한 꽃내음이 났고, 그가 하는 말은 언제나 그랬듯 달콤했다.
그의 하얗고 고운 손이 도로테아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하지만.

“……미안해, 에단.”

도로테아가 말라서 잔뜩 갈라진 입술을 떼며 뒤로 고개를 돌렸다.
바깥에서 백성의 원성과 신하들의 분노가 들려왔다.

“나는 악이야.”

저들 목소리를 들어봐. 내가 악이 아니고선 누가 악이겠어.
도로테아가 웃었다.
아무래도, 권선징악, 세상엔 그게 필요한 것 같아.

“너는…… 성군이 되길 바라.”

굳이 그렇게 바라지 않아도, 에단 브론테는 도로테아 밀라네어보단 나은 군주가 될 것이다.
도로테아가 아는 에단은 유능하고 만인에게 사랑받는 사람이었으니까.

폭군을 죽였다면 그 황제는 도로테아 밀라네어와 달리 정당성을 얻을 테니까.
도로테아의 말에 에단이 입술을 깨물었다 놓았다.

“어째서 살 생각을 하지 않으십니까?”

“…….”

대답이 없는 도로테아를 바라보던 에단은 꽉 쥐고 있던 주먹을 펴서 내밀었다.

“받으세요.”

그의 손 위엔 지금껏 단 한 번도 본 적 없던 커다란 보석이 놓여 있었다.
마치 그 자체로 빛이 나는 듯한 그 보석을 도로테아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에단이 애타는 붉은 입술을 다시 열려 했으나, 곧 그녀의 눈빛에 멈추었다.
그의 손이 다시 꽉 쥐어지며 아래로 떨어졌다.
에단 브론테. 눈치가 참 빠른 사람.
그는 그녀의 마음을 눈빛만으로도 알아차렸다.

“당신…… 당신은 세상 누구보다 잔인하신 분입니다.”

에단이 나직이 웅얼거렸다.
그에 도로시는 감정 없는 눈동자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알고 있어.

“그래서, 사람들은 날 폭군이라 부르지…….”

도로테아는 멀리서 폭우처럼 쏟아지는 비난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힘없이 웃었다.
그리고 도로테아는 에단을 뒤로 하고 처형대로 올랐다.
아무것도 갖지 못했던 처음과 같이, 그녀는 다시 빈손이었다.
과분하게 강탈했던 황위도 없었다.
억지로 취하려 했던 사랑도 없었다.

표독스럽게 쌓아온 부와 권력도 없었다.
찢기고 더러워진 몸으로 마침내 처형대에 올라갔을 때. 도로테아는 기뻤다.
처형대에 길로틴이 서 있는 것을 보며 도로테아는 교수형이 아니라는 것이 아쉬웠다.
아니지, 감히 테온과 같은 방식으로 죽을 자격이나 있나?
아쉬움이 있다면 딱 하나.

조금만 더 빨리 죽을걸.
테온이 자살하기 전에 먼저 죽을걸.
줄리아가 죽기 전에.
레이먼드를 죽이기 전에.
카르넌이 죽으며 유언을 남기기 전에.
레이먼드가 황태자가 되기 전에.
내가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란 걸 깨닫기 전에.
어머니가 나를 낳다 죽기 전에.
좀 더 일찍 죽을 걸 그랬어.

그랬다면 아무도 죽지 않고 행복했을 텐데.
나를 보며 욕하고 돌을 던지는 저들도 행복했을 텐데.
됐어. 인생의 교훈은 이 정도면.
그러니 어서 나를 죽여줘.
더 일찍 죽지 못한 걸 후회하기 전에.
긴 죄목 아래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도로테아는 기꺼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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