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님은 착하게 살고 싶어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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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교훈은 권선징악. 그리고 나는 악이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손에 넣었다.
돈, 권력, 힘, 그리고 남자까지.
내 눈에 거슬리는 사람은 제거했고 내 마음에 드는 사람에겐 나의 힘을 나누어주었다.
온 세상이 내 손 위에 있는 듯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 가진 그 끝은 파멸이었다.

행복만 남았을 것이라고 생각한 나의 삶이 누구보다 초라한 한 줌의 재로 끝날 것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어쩌면 나는 처음부터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것일지도…….
내가 사랑했던 남자는 나를 증오하며 죽음을 택했고, 내가 힘을 나누어준 사람들은 그 힘으로 나의 목을 졸랐다.

사람들은 나를 폭군이라 손가락질했고, 그들의 분노가 나의 궁을 불살랐다.
나의 궁전은 불꽃 속에서 어느 때보다 화려하게 빛을 발했다.
그래, 이 정도면 됐어.
삶의 교훈은 이 정도면 충분해.
나는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였다.
* * *

“우르르, 까꿍?”

그런데 이건 무슨 상황일까?
내 앞에서 재롱을 떠는 얼굴을 보고 생각했다.
이 유모, 낯이 익어.
마음처럼 움직여지지 않는 손발을 허우적거렸다.
목화솜처럼 하얗고 작은 손이 하찮은 움직임으로 흐릿한 허공을 휘저었다.
갓 태어난 아기처럼 오동통하고 작은 손.

“도로테아 황녀님. 여기 보세요!”

유모가 핑그르르 내 눈 위로 걸린 모빌을 돌려주었지만 그보다 유모의 말에 정신을 빼앗겼다.
도로테아? 지금 도로테아라고 했어?
나의 이름, 도로테아 밀라네어.

황녀로 태어나 황태자였던 오라버니를 제 손으로 죽이고 황위에 오른 제국 우베라의 황제.
그러나 젊은 나이로 만인 앞에 처형당한 폭군 도로테아.

“도로테아 황녀님, 이리도 예쁜데 어떻게 한 번을 웃지 않으실까?”

유모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웃지 못하는 게 당연하잖아!
분명 방금까지도 모두 나를 가리켜 폭군이라 외치며 죽이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비참하고 후회 가득한 끝은 마치 물거품처럼 사라져 있었다.
한 조각 꿈이었을까? 악몽이었을까?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어. 그게 다 꿈이었다면…….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 과거의 기억들은 목덜미가 서늘할 정도로 생생했다.
감당하기 힘든 괴로움이 심장을 짓눌러서 신생아의 약한 눈물샘을 터지게 할 것만 같았다.

“에구머니! 배가 고프신가?”

울먹이는 나를 유모가 안아 올렸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온기가 나를 감쌌다. 따뜻하고 안락하고 사려 깊은…….
그래, 이건 어쩌면 하나의 가르침이었을지도 몰라. 올바르게 살라는 가르침.
악과 후회로 얼룩진 나의 인생을 되돌릴 수 있는 기회.
한 번의 삶을 더 살 만큼 불타는 열정과 의욕은 소진하고 피로감과 침울함만이 가득했지만 그렇다고 살아내지 않을 수도 없었다.

맞아, 다시 그렇게 끝날 순 없어.
나는 같은 후회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착하게 살자.
이번 생의 목표는 그것이다.
* * *
하지만 일단 말도, 걷는 것도 못 하는 아기 신세로는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요람에 누운 채 빙빙 도는 모빌이나 보며 꼬물거리다가 졸리면 자는 게 전부인 삶.
칭얼대지 않고 덜 울어주는 게 지금 할 수 있는 착한 삶이랄까?
답답한 감은 없잖아 있었지만 안락하고 편안한 나날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잠을 자본 게 얼마 만이지?’

아기의 수면욕이란 실로 대단한 것이어서 조금만 포근하다 싶으면 스르르 잠이 들었다.

불면증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던 내겐 꿀처럼 달콤한 시간이었다.
보석보다도 귀한 잠에 몸을 맡기려던 그때, 내 평화를 깨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로도로시!”

요람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 혀가 짧은 발음으로 이상하게 나를 불러대는 목소리.

“아가, 내 동생!”

한껏 들뜬 인사와 함께 요람 위로 고개가 불쑥 튀어 올라왔다.

“잘 잤어?”

맑은 날의 바다처럼 푸른 눈동자, 부슬부슬한 백금발 곱슬머리에 양 볼 가득한 젖살. 생기 넘치는 연홍빛 뺨이 사랑스러운 나의 오빠.
정확히는 내 손에 한 번 죽었던 아둔한 나의 오빠, 레이먼드 밀라네어.

“아가 보고 싶었어!”

레이는 나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살굿빛이 도는 발그레한 뺨은 복숭아 같았고, 그에게서 풋내 나는 우유 향이 풍겼다.
순수하고 무방비한 동그란 눈이 나를 사랑스럽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저 눈이었다.
아둔하리만치 선해서 보고 있자면 역겨운, 내가 폭군의 길에 첫발을 내딛게 만든 눈.

“오빠가 우리 아가 지켜줄게.”

그는 예나 지금이나 비슷했다.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순수한 눈동자가 퍽 가소로워서 코웃음이 나왔다.
내 손에 죽었던 주제에 지켜주겠다니.
정당한 황태자, 레이먼드 밀라네어.
나는 친오빠인 그를 직접 내 손으로 죽이고 황위에 올랐다.
폭군 도로테아 밀라네어의 역사는 그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됐다.
그의 심장을 찌르던 그날.
단풍잎처럼 작은 이 손에 아직도 그 감각이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것만 같았다.

‘이번 생에 또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어.’

레이를 죽이고 황위를 찬탈한 것.
그것은 내 모든 후회의 시작점이었다.
그를 다시 죽일 수는 없다.
또다시 폭군이 될 수는 없다.
그러니까, 나는 그를 미워하지 않고 어떤 짓을 해도 참아야…….

“쫀득쫀득 말랑말랑해.”

레이는 내 볼이 뜯겨 나갈 때까지 조몰락거릴 기세로 얼굴을 만지작거렸다.
참아야 해. 그를 죽이지 않으려면 참아야…….

“귀여워!”

쭈욱 늘어나는 나의 볼.
결국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랐다.

“으아앙!”

나는 고함치듯 크게 울며 레이의 손을 꽈악 쥐어뜯었다.

“아가! 울어!”

꼬집은 손이 아팠는지 레이는 허겁지겁 손을 떼며 유모를 찾았다.

착하게 살아주려고 하는데 굳이 건드려서는!
나는 레이가 손을 떼자마자 울음을 뚝 그쳤다.
까닭 없이 울어서 소음 공해를 유발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러나 유모는 놀라서 나를 품에 안아 들며 달랬다.

“레이 황자님!”

“세게 안 만졌어…….”

“황녀님 볼이 빨개졌잖아요!”

유모의 타박에 레이는 호두 턱을 만들고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그치만 아가 너무 귀여운걸.”

레이는 유모의 팔을 붙잡고 바짝 다가서더니 그 품에 안긴 나를 들여다보았다.
동그랗고 뽀얀 얼굴이 시야를 가득 뒤덮었다.
아, 제발.
레이를 죽이고 황위를 빼앗았다는 것만 봐도 알겠지만, 나는 본디 레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의 아둔함과 답답함, 멍청함이 예전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던 탓이다.

그런 주제에 나보다 많은 것을 가진 그를 납득할 수 없었다.
고로, 그를 죽인 것은 미안한 일이지만 내 얼굴에 그의 뜨거운 숨결이 닿는 것까지 기쁘게 받아들일 사이는 아니란 의미였다.

‘당나귀가 옆에서 킁킁대는 것 같아서 불쾌해.’

바짝 얼굴을 들이민 레이 때문에 미간을 구기는데, 레이가 빙그레 웃더니 분홍빛 입술을 쭈욱 내밀었다.

“아가 뽀뽀!”

뭐?
이번 생에 들었던 말 중 가장 끔찍한 소리에 미간에 족히 세 배 이상의 힘이 들어가며 힘껏 구겨졌다.
그러나 볼에 닿아오는 축축하고 말캉한 감촉.
레이는 내 볼에다 대고 쭈압 소리가 나도록 진하게 뽀뽀했다.
눈앞에 펼쳐지는 지옥도.
미끄럽고 불쾌한 흡입력에 내 볼살이 저항하지 못하고 빨려 들어갔다.

‘으윽! 더러워!’

“으아앙! 으아아앙!”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불만을 표하며 발버둥 쳤다.
내 울음에 레이가 또다시 놀라 뒤로 물러났다.
부디 신이시여, 이번 생을 착하게 살 수 있도록 이놈을 제 앞에서 치워주소서!
착하게 살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 * *
나의 성장은 빨랐다.
키는 다른 아이들과 다를 바 없이 비슷하게 자랐으나 남들보다 일찍 말하고 남들보다 일찍 걸었다.

이미 하는 법을 알고 의도적으로 연습한 내가 남들보다 빠른 건 당연한 일이었다.
유모는 내 성장 속도에 경이감을 금치 못하며 매일매일 놀라워했다. 레이도 마찬가지였다.

“인도주의? 그게 뭐야?”

“사람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거.”

“도로시는 그런 말을 어떻게 알아? 천잰가 봐!”

레이는 나를 꼬옥 끌어안았다.
그에게서 싱그러운 풀꽃 향기가 났고, 부슬부슬한 그의 금발 머리카락이 살랑거리며 피부로 느껴졌다.

“이거 놔.”

“도로시는 이렇게 작고 귀여운데 어떻게 그런 멋진 말도 다 알지?”

“놓으라니까.”

“세상에 도로시처럼 귀엽고 똑똑한 아가는 없을 거야!”

레이는 세 살이 된 나를 번쩍 들어 안았다. 나의 조그만 몸이 인형처럼 붕 공중으로 들어 올려졌다.

‘힘은 세 가지고!’

레이도 고작 다섯 살인데 힘이 어찌나 센지 나를 들곤 둥실둥실 위아래로 흔들기까지 했다.
그러더니 또 그 분홍빛 입술을 쭈욱 내밀고 내 뺨에 쪽쪽쪽쪽쪽 연달아 뽀뽀하는 것이다. 무려 다섯 번이나!

“더럽게!”

아기 때와 달리 나는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고 정확하게 의사를 표현할 수 있었다.
나는 레이의 입술이 닿았던 뺨을 손등으로 거칠게 문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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