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님은 착하게 살고 싶어 16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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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날 쳤어? 검도 제대로 못 잡는 새끼가……!”

아무리 낙제생 딱지를 달고 살았다고 해도 조나단은 에피스테메에서 배운 사람이다.
그곳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검술과 기마, 궁술 등을 배운 그는 적어도 에단보다는 싸움에 능통했다. 게다가 키는 에단보다 살짝 작아도 덩치는 그보다 더 컸다.
조나단은 아예 에단을 제압하고 주먹을 얼굴에 후려갈겼다.

조나단은 예전부터 그의 동생이 싫었다. 아니, 동생이라고 부르기도 싫은 존재.
가증스럽게 예쁜 얼굴을 한 에단은 어릴 때부터 그를 교묘하게 가지고 놀았다.
그리고 늘 인정받는 것은 에단.
에피스테메를 간 그보다 똑똑하다고 칭찬받았고, 어딜 가도 에단이 더 주목받았다.
에단이 황녀를 홀린 뒤로, 그리고 황제가 에단에게 관심을 보인 뒤로 가문에서도 에단을 꽤 당당히 내보이기 시작했다.
조나단은 그 속에서 늘 비교당했다.

‘동생보다 못생겼어. 동생은 에피스테메에 가지 않고도 똑똑한데 쟤는 맨날 낙제야. 에단은 피아노와 바이올린 실력도 엄청나다며! 너무 멋있다!’

일반적으로 놓고 봤을 때 조나단이 정말 못난 건 아니었다. 에피스테메에서 낙제를 몇 번 했어도, 아무튼 그 어렵다는 에피스테메는 그의 힘으로 통과했다.
게다가 외모도 못생긴 편은 아니었다. 조나단은 그래도 제 외모가 꽤 봐줄 만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에단의 옆에 있으면 그는 그림자보다도 주목받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그런데 오늘 참석한 모임에서 한 귀족이 조나단에게 건넨 말.

‘아니, 에단 님은 황태자 전하께서 직접 황궁에 들어와 일을 도우라 하셨다는데, 조나단 님은 아직도 성곽 경비입니까?’

그를 둘러싼 귀족들이 모두 그를 에단과 비교하며 무시하고 있었다.
에단보다 못한 놈, 못한 놈, 못한 놈.

“네가 뭔데 내 앞길을 막아! 어?”

조나단은 몇 년간 쌓인 분노를 에단에게 풀어댔다.

“도, 도련님!”

위층에서 벌어지는 소란에 집사와 고용인들이 달려와 두 사람을 말리며 떼어놓았다.
에단의 입술이 터져 있었고, 관자놀이 쪽에 멍이 든 것 같았다.

“퉤! 거지 같은 새끼.”

고용인들이 양팔을 붙잡고 말리자 조나단은 에단을 향해 침을 뱉었다.
술주정으로 웃고 넘어가기엔 그의 행동은 도가 지나쳤다.
집사들은 취한 그를 끌고 갔고 에단은 바닥에 앉은 채 일어서지 못했다.

주먹을 말아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번 생엔 그가 먼저 조나단을 손바닥 위에서 굴린 편이라 잠시 잊고 있었는데, 회귀 전엔 조나단에게 이렇게 자주 당했더랬다.

그땐 조나단보다 덩치도 작았고, 낯선 공작가에 들어와 적응하느라 모든 게 무섭던 시기였기에 조나단에게 ‘굴러 들어온 예쁜 아이 에단’은 괴롭히기 좋은 존재였다.
회귀 전의 어린 시절엔 조나단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공작가 구석에 숨어 덜덜 떨던 날이 많았더랬지. 그래서…… 그가 죽었을 때 기뻤고.
오랜만에 떠오른 옛 기억에 에단은 몸서리쳤다.
* * *

“괜찮으십니까, 도련님?”

조나단이 물러간 뒤 고용인들이 우르르 몰려와 그를 살폈다.
잘생긴 얼굴에 난 상처가 안타까운 듯 그들은 에단의 상처를 돌봐 주려 했다.

“괜찮으니 나가봐요.”

“하지만 도련님…….”

“나가봐요.”

에단의 목소리가 얼음처럼 차갑게 굳은 후에야 고용인들은 약을 두고 방에서 물러났다.
에단은 조나단과의 싸움으로 엉망이 된 방을 보았다.
핏기를 머금은 입술 사이로 픽 조소가 새어 나왔다.
벽 한쪽에 놓인 거울로 엉망이 된 그의 얼굴이 비쳤다.
눈 아래쪽의 핏줄이 터져 푸른빛이 도는, 만신창이가 된 한 남자가 보였다.

에단은 거울에 비친 초라한 자신을 응시했다.
바이올린을 켜는 것도, 피아노 연주를 하는 것도 거울 속 사내의 표정을 밝힐 수 없을 것 같았다.
다만, 도로테아가 너무 보고 싶었다.
* * *

“에단 도련님! 너무 오랜만이에요!”

에단이 도로테아를 만나러 궁에 다시 들어간 건 일주일도 더 지난 후였다.
클라라와 조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반겼다.

“내가 최대한 빨리 오라고 했는데 왜 이제야 와!”

조이는 도로테아가 걱정되는데 이렇게나 늦게 온 에단이 원망스러웠다.
에단은 차마 얼굴에 멍 자국이 있는 채로 도로테아를 만날 수 없었다고 말하진 못했다.

“선물을 준비하느라 늦었다고 했잖아.”

에단은 선물 핑계를 댔다.
아니, 완전히 핑계는 아니었다. 이번 선물은 준비하는 데 시간이 좀 필요했던 건 사실이니.

“선물 준비하라고 보내준 게 언젠데!”

“너 하나만 보고 준비한 게 아니니까 그렇지. 그래서, 황녀님은 안에 계신가?”

“그래, 어서 들어가 봐. 황녀님은 도련님 오는 거 모르고 계시니까.”

늘 에단을 경계하기만 하던 조이가 이젠 그의 등을 떠밀기까지 했다.

그에 에단은 웃으며 도로테아가 있을 서재로 향했다.
* * *

“황녀님께서 특별히 부탁하신 하르크 국경에 관한 보고서입니다.”

“고마워, 테온.”

도로테아는 테온으로부터 한 건의 보고서를 받아보았다.

“예상하신 대로 하르크 국경에 군사가 증강되었습니다.”

도로테아는 하르크 관련 보고서를 훑어보았다.
회귀 전과 마찬가지로 네레우스는 군사력 증진에 힘을 쏟고 있었다.

‘하지만 전쟁을 일으킬 명분도 없는데…….’

그렇게 생각하던 도로테아는 속으로 비소를 터뜨렸다.
세상에 언제 전쟁을 이유가 있어서 했나? 욕심으로 했지.
명분은 아무거나 그럴듯한 것을 만들어 끼워 맞추면 되는 것이다.

“하르크가 리버사우스에서 소형선을 구매했네.”

“예, 상당한 수지만 어선인지라 특별히 황실에 보고할 의무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군선으로 개조해서 쓰긴 충분하겠지.”

도로테아가 중얼거렸다.
‘어선’이라고 표기하기는 했지만 어떤 형태의 선박일지는 드미트리와 네레우스만 알 것이다.
어떤 배든 무기가 아닌 그물을 실으면 ‘어선’이라고 표기하니까.
배의 형태만 맞는다면 어선을 군선으로 개조하는 건 간단한 일.
도로테아는 하르크가 회귀 전에 어떻게 우베라를 침략했는지 기억하고 있었다.

“설마 드미트리 후작이 군선을 납품했겠습니까……?”

그래도 드미트리는 제국의 귀족이다. 하르크에 군선을 납품할 리가…….

“돈만 있으면 안 될 것도 없지.”

도로테아가 말했다. 게다가 정치적인 연줄까지 있다면 기꺼이 도우리라.
네레우스도 ‘우베라가 아닌 다른 국가를 견제하기 위함’이라고 말했을 테니, 드미트리가 눈 감고 넘어가기엔 충분한 변명거리가 될 것이다.
게다가 화포를 실은 것도 아니니…….

“하지만 납품한 배의 크기는 해전을 치르기엔 작습니다. 강이나 얕은 바다에서는 유용하겠지만, 제국과 하르크를 연결하는 강은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도록 댐으로 막혀 있습니다. 만에도 사슬이 설치되어 있고요.”

“맞아.”

도로테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래서 위험하다.

‘배는 물길이 아니라 산을 넘어서 올 거야.’

도로테아는 회귀 전, 하르크와의 싸움을 떠올렸다.
그들은 강변의 요충지를 공격하며 정면에서 시선을 끌고, 뒤로 몰래 산을 넘을 것이다.
물의 정령으로 산에 작은 물길을 뚫어 배를 넘기는 것이다.
때문에 네레우스에겐 굳이 대형 함선이 필요하지 않았다.
대형 함선은 산을 넘기에 지나치게 크고, 강에 띄우기도 어려우니까.

그렇게 제국의 강줄기에 무혈입성한 그들은 그대로 강을 거슬러 제국의 심부를 향해 올라왔다.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전략이기에 아무도 막지 못한 공격.
하필이면 카르넌이 위독한 시기였기에 우베라는 완전히 혼란에 빠졌다.
하르크를 가볍게 여기며 지방의 병력으로만 해결하려 했던 귀족들의 여유는 그렇게 깨진 것이다.

물의 정령을 다룰 줄 아는 네레우스의 지휘하에 하르크의 수군은 날개를 단 듯 빠르게 중심부로 올라왔다.
그걸, 미리 내려가 있던 도로테아가 막아냈다.
다들 아래에서 해결할 수 있는 작은 전투이니 내려갈 필요가 없다며 만류할 때, 하르크를 부숴 버리겠다며 기어이 군을 끌고 내려갔던 그녀.

도로테아는 국경이 뚫렸다는 소식을 듣고 곧장 강으로 향했다.
그리고 하르크의 수군이 기세등등하게 강을 거슬러 올라올 때 미리 막아두었던 둑을 터뜨렸다.
아무리 네레우스에게 물의 정령이 있다 한들 터진 둑에서 쏟아져 나오는 거대한 물살은 막지 못했고, 소형선들은 휩쓸려 내려갔다.

‘이번에도 그런 전략을 준비하고 있는 거야.’

회귀 전보다 제국의 상황은 좋은 편이지만, 네레우스의 의지는 꺾이지 않는 모양이다.
게다가 만약에 그의 귀에 카르넌과 레이먼드의 불안정한 상황이 알려지면 네레우스는 호기를 노려 침략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다들 너무 앞서나간 이야기라며 믿지 않겠지.’

하르크가 어선 몇 척 구매한 것을 두고 호들갑을 떤다고 비웃을 것이다.
그래도 미래를 알고 있기에 충분히 막을 수 있겠지만…….

‘그 둑을 터뜨리며 마을 몇 개가 휩쓸려 갔어.’

적군의 희생만큼 우베라의 희생도 상당했다.
제국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둑 하류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희생된 것이다.
당시의 도로테아는 그들의 생명보다 우베라의 존망이 중요하다는 이유로 가차 없이 둑을 터뜨렸다.
폭군이라는 이름에 보탠 한 줄의 죄.
하지만 이번에는 그 희생을 또 치르게 할 수는 없다.

“황제 폐하께서도 이 내용을 알고 계셔?”

“이번 주 중으로 동일한 내용이 폐하께 올라갈 것입니다. 아, 그리고 주목할 만한 부분이 이쪽에 보시면…….”

그때 보고서의 일부를 짚어주려던 테온의 손가락이 다음 장으로 넘기려던 도로테아의 손가락을 스쳤다.

“아……! 죄송합니다, 황녀님.”

테온은 그녀와 손가락이 닿자 급히 손을 떼며 뒤로 물러났다.
그 바람에 책상에 올려져 있던 브로치가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정말 죄송합니다, 황녀님.”

테온은 서둘러 떨어진 브로치를 주웠다.
그 순간 그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묵직하게 몸을 짓누르던 것이 가벼워지는…….

‘빛의 정령……?’

“테온.”

도로테아의 부름에 테온은 정신을 차리고 그녀에게 브로치를 돌려주었다.
그녀는 잠시 테온의 눈치를 보더니 브로치를 다시 가슴에 달았다.
테온은 손에 남은 여운을 느끼며 그녀의 브로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그 브로치 항상 하고 다니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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