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님은 착하게 살고 싶어 15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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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하는 내내 포는 울지 않으려고 참으며 훌쩍거렸다.
그 소리에 도로테아는 가슴이 욱신거렸다.
휴게실의 문을 닫고 도로테아는 포를 돌아보았다.

“포, 무슨 일인지 네 입으로 솔직하게 말해줘.”

도로테아의 말의 포는 눈물이 글썽이는 눈가를 소매로 닦으며 축축하게 젖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황실의 음식을 훔쳤어요…….”

포는 자신의 죄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의 떨리는 어깨가 보였다.

“먹을 게 부족하지도 않을 텐데 왜 음식을 훔쳤어?”

도로테아는 진심으로 궁금해서 물었다.
그는 주방에서 일하고 있으므로 음식을 훔치지 않고도 먹으려면 먹을 수 있었다.
바빠서 끼니를 거르는 일들이 있곤 했지만, 틈이 날 때면 얼마든지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도, 남는 음식을 먹을 수도 있었다.
요리사들에게 음식을 박하고 엄하게 따져 물을 정도로 황실이 팍팍한 건 아니었다.

게다가 이제 그린월의 이름을 가진 포는 람파스에 조이, 슈테판과 함께 지낼 수 있는 작은 저택이 있었고, 그가 버는 임금으로 충분히 먹을 것을 사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대체 왜……?

“……아까워서요.”

“뭐?”

“……아까웠어요. 버려지는 음식들이.”

포가 히끅거리며 말했다.
황실에서는 늘 많은 양의 음식이 남는다.
매 끼니 푸짐하게 차리는 것이 미덕인 황실에서는 만든 음식의 절반이 남곤 했다.
특히 파티나 연회, 행사가 있는 날이면 홀 케이크가 그대로 남거나, 신선한 과일들이 바구니에 담긴 채 조형물 취급을 받거나, 딱 한 점 뜯어 먹은 칠면조가 통째로 버려지곤 했다.

누군가는 평생 먹어 볼 일 없는 값비싼 새우와 보석보다 비싸다는 버섯도 버려졌다.
산처럼 쌓인 음식은 가축의 여물이나 퇴비가 되거나, 그도 못 되면 물과 땅을 더럽히는 음식물 쓰레기가 되었다.

“당장 거리에서 굶는 자들에게 주면 수십 명이 며칠 동안 먹을 수 있는 음식인데……. 그걸 다 버리는 게 너무 아까워서 그래서 빼돌렸어요.”

포는 버려지는 음식이 아까워, 그중 괜찮게 남은 것들을 챙겨 밖으로 몰래 가지고 나갔다.
그리고 그 음식을 빈민가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다.

“그래선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몰래 빼돌린 거였죠…….”

포가 말했다.
남는 음식 또한 황실의 재산이므로 절대 다른 데에 써선 안 된다고 일찍부터 교육받았다.
왜 빈민에게 나눠주지 않는지도 알았다.
황실에서 남는 음식을 나눠주면 나눔을 받는 자들은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려는 거냐며 모욕감을 느낄 수도 있고, 나눠 받지 못하는 자들은 차별이라며 분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품질의 문제와 분배의 문제. 모두에게 공평하게 정확한 기준으로 깨끗한 음식을 나눠줄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황실에서 남는 음식은 버려야 한다.

게다가 황실에서 쓰는 최고급 식재료는 부유한 자들만이 맛볼 수 있는 권리, 특권이었다.
가난하고 미천한 자가 감히 보석보다 비싼 버섯을 공짜로 맛보다니? 그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

하지만 포는 이를 알면서도 어겼다.
그 또한 배를 곯아봤기에, 누군가 굶어 죽는 동안 이렇게 귀한 음식들이 한가득 버려지는 걸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음식을 버릴 때마다, 나쁜 생각이 들었다.

‘내가 며칠 동안 굶을 때도 여기선 이런 음식들이 버려졌겠구나.”

화가 나고 억울하고 비참하기도 했다.
그리고 과거의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을 자들이 떠올라 괴로웠다.

“제 잘못이에요, 황녀님.”

포는 다시 도로테아 앞에 무릎을 꿇었다.

“죄송해요, 황녀님. 저를 거둬주시고 가르쳐 주시고 이렇게 귀한 자리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주셨는데……. 이런 죄를 저질러 황녀님 이름에 먹칠을 했어요.”

포는 땅에 머리를 박을 듯 깊이 숙이며 울었다.
남는 음식을 아까워하는 거지 근성과 가난한 자들을 돕겠다는 어쭙잖은 정의감으로 그는 죄를 저지르고 말았다.

“레니에르 님도 저를 위해 묵인해 주셨는데 결국 들킨 거예요.”

별궁인 아나스타스 궁에서 지낼 때부터 포를 아껴주던 레니에르는 포를 지켜주려고 했다.
하지만 출신이 미천한 포가 점점 실력을 인정받고 높은 자리로 올라가자 그를 시기 질투한 주방의 요리사 하나가 그를 헤드 셰프에게 신고했다.
레니에르는 포를 두둔하려고 했지만 포는 레니에르까지 이 일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이것은 그의 죄였으니까.

“저도 황녀님처럼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어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한심하게 제 능력이 아니라 황실의 재산을 도둑질해서 그런 짓을 한 거예요. 그러면서 사람들이 기뻐하고 고마워할 때마다 혼자서 뿌듯해했어요.”

포의 목소리는 점차 눈물에 막혀 나오지 않았다.
그가 이런 일을 벌인 데엔 도로테아의 영향도 있었다.
도로테아가 내밀어준 손이 얼마나 달콤한 구원인지 아는 그는, 자신도 누군가에게 그런 구원이 되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도로테아에 비하면 한없이 작은 손길일지 몰라도 최소한의 살아갈 희망은 건네주고 싶다고.

하지만 방법이 틀렸다. 미련하고 능력도 없으면서 그의 삶을 바꿔준 도로테아처럼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착각했다.
도로테아는 그런 포를 조용히 내려다보았다.
그가 죄를 저지른 건 명백한 사실이었고, 황실의 법도를 황녀가 나서서 어길 수는 없었다.
하지만.

“잘했어, 포.”

도로테아는 포에게 그렇게 말했다.
법도에는 어긋나지만, 그가 한 일을 두고 화를 내거나 잘못이라고 손가락질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요……. 제 돈으로 해야 했어요. 음식을 아까워하지 말고, 그 사람들이 불쌍했으면 제 돈으로 도와야 하는 거잖아요.”

포는 도로테아의 위로에 고개를 저었다.

그에 도로테아는 포의 부들부들한 머리카락을 쓸어주었다.
정말 착한 아이.

“난 널 이곳으로 데려온 게 하나도 후회되지 않아.”

도로테아는 그의 앞에 무릎을 굽혀 마주 앉았다.
포가 눈물에 범벅이 된 고개를 들어 도로테아를 보았다.

“물론, 난 이 일을 없던 일로 만들어줄 순 없을 거야. 황실의 법도가 그러하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네 인생이 끝나지도 않을 거야.”

포의 눈동자가 떨렸다.

“제게 실망하지 않으세요?”

“전혀.”

네가 저지른 죄는 내가 저지른 죄에 비하면 아름다우니까.
도로테아가 포를 품에 안았다.
그러자 포는 겨우 그쳤던 눈물을 그녀의 어깨에 다시 쏟아냈다.
* * *
조이는 초조하게 도로테아와 포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사이에 어떻게 소식을 들었는지 멀리서 슈테판이 달려왔다.
슈테판이 조이를 바라보자 조이가 소매로 눈을 쓱쓱 훔치고는 입을 열었다.

“황녀님이 포랑 얘기해 보겠다고 데려가셨어요.”

“…….”

“황궁에서 매를 맞고 쫓겨날 거래요. 어떡해요?”

“…….”

걱정 가득한 조이의 말에 슈테판이 묵묵히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그에게는 주방의 일에 함부로 끼어들어 왈가왈부할 권한이 없다.
하지만 그는 포를 믿었고, 포가 어떤 잘못을 했어도 같은 그린월로서, 가족으로서 그를 품고 책임질 생각이었다.
그때 마침 도로테아가 포와 함께 문을 열고 나왔다.
조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도로테아를 향해 달려갔다.

“황녀님!”

슈테판도 조이를 따라 달려가자 포가 슈테판을 발견하곤 몸을 움츠렸다.

“죄송해요. 제가 그린월의 이름을 욕보였어요.”

도로테아의 다독임으로 겨우 그쳤던 포의 눈물이 또 쏟아지려고 했다.

“저를…… 저를 파문하셔도 돼요.”

포가 떨리는 손을 꽉 말아쥐며 슈테판에게 말했다.
그러자 슈테판이 포의 어깨를 단단히 붙잡았다.
포가 고개를 들자 슈테판은 늘 그렇듯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고요함이 따뜻해서 포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포는 벌을 받을 거야.”

“저, 정말이에요?”

“잘못한 데에 대해선 벌을 받아야 해, 조이.”

“…….”

조이는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자신의 동생이 죄를 저질렀다는 걸 인정할 수 없었으나, 그녀는 고집을 꺾어야 했다.

“헤드 셰프는 황실의 법도에 따라 이 일을 처리하세요.”

도로테아의 말에 슈테판 또한 손을 움찔했다.
그뿐만 아니라 모여 있던 다른 주방의 사람들도 의외라는 듯 놀라 서로 눈치를 보았다.

“포의 죄를 인정하시는 겁니까?”

헤드 셰프가 물었다.

“포가 제게 거짓말을 할 리는 없으니까요. 그가 말한 게 모두 사실이라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는 것이 합당하겠죠.”

도로테아는 그렇게 포의 손을 놓았다.
포와 그녀의 눈이 마주쳤고, 도로테아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에 포는 헤드 셰프 앞으로 가 고개를 숙였다.

“벌, 달게 받겠습니다.”

그러자 헤드 셰프는 고민하는 듯 입을 다물고 그를 내려다보았다.

“레니에르.”

“예, 헤드 셰프.”

“포를 데려가. 당장 짐을 싸게 해.”

“정말이십니까, 헤드 셰프? 포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한 번만 기회를 주시면 앞으로는 분명 그러지 않을 겁니다……!”

레니에르는 도로테아와 슈테판에게 구원을 청하는 시선을 보냈지만 도로테아는 포를 편들어주지 않았다.
슈테판도 입을 다문 채 거목처럼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레니에르. 법도는 법도다. 황실 재산을 지속적으로 빼돌린 건 중죄야.”

엄격한 헤드 셰프의 말에 레니에르의 입이 다물렸다.
황녀도 뭐라고 하지 않는 상황에서 레니에르가 더 반항할 구석은 없었다.

“초범임을 감안해서 매질은 하지 않겠다. 하지만 포 그린월은 영원히 황실 주방에 발을 들이지 못할 거다.”

슈테판과 도로테아가 있는 앞에서 불명예스러운 일을 맞이하자 포의 고개가 바닥으로 푹 꺼졌다.
헤드 셰프의 말에 레니에르는 포를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
그러자 뒤에 서 있던 몇몇 요리사가 포의 작은 뒷모습을 보며 비웃음을 흘렸다.
조이는 억울한 듯 움켜쥔 주먹을 펴지 못했고, 슈테판은 그녀의 어깨를 조용히 토닥여 주었다.
에단은 도로테아를 바라보았다.
무표정한 그녀는 포를 옹호해 주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있었다.

‘……현명하신 분.’

도로테아가 나서서 포를 편들면 황실의 법도를 황녀가 깨는 것이 된다.
게다가 포가 황녀의 비호를 받는다며 구설에 오르고 안 좋은 시선을 받게 될 것이다.
다만, 그녀는 이 자리를 떠나지 않고 지키고 있었다.
그녀는 안다. 자신이 이곳에 있는 것으로도, 그녀의 시선만으로도 상황이 유해질 수 있다는 것을.

헤드 셰프가 그녀의 눈치를 보면서 초범임을 참작하여 매질하는 것을 거두었고, 그 뒤에 서 있던 다른 요리사들도 포를 비난하는 말을 함부로 하지 못했다.
감정을 죽이고 다시 한번 숙고하게 하는 힘이, 황녀에게는 있었다.
포가 레니에르와 사라지자 도로테아는 고개를 돌려 슈테판과 눈을 마주쳤다.
조이를 달래던 슈테판은 입을 다문 채 조용히 눈인사했다.
그녀의 뜻을 이해했다는 뜻.

“돌아가자, 에단.”

도로테아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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