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님은 착하게 살고 싶어 1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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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도로테아, 레이먼드, 카르넌 중에 레스토랑 카로에 올 만한 사람을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세 사람 중 카로 안에 앉아 있는 그림이 그려지는 사람은 없었다.

‘……황실 관련 업무로 마차가 왔나? 카로의 주방장을 황실로 데려가려고 한다든가.’

꼭 황실 사람만 태우라는 법은 없으니, 용건이 있어 마차를 보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슴 한쪽엔 찜찜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에단 님……!”

마침 카로 앞에서 그를 기다리던 모니카가 그를 반겼다.
일부러 약속 시간보다 늦게 왔는데도 그녀는 화가 난 기색이 없었다.

“황실의 마차가 있군요. 누가 왔나 보죠?”

“아, 도로테아 황녀님께서 와 계신대요.”

모니카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그에 미소를 장착하고 있던 에단의 표정이 굳었다.

‘카로에 도로테아가 와 있다고?’

그녀의 취향이라면 누구보다 잘 아는 에단이다. 도로테아는 절대 이런 분위기를 즐길 사람이 아니다. 당연히 먼저 나서서 이런 곳을 찾아올 사람도 아니고.
그 말은 누군가가 도로테아를 이곳으로 초대했다는 뜻. 그리고 도로테아가 그 초대에 군말 없이 응했다는 뜻.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오직…….

‘테온 프리드…… 겠군.’

영리한 데다 도로테아에 대해 잘 아는 그는 손쉽게 상대를 맞출 수 있었다.
에단은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도로테아가 정령의 힘을 가지고 테온과 가까이 지낼 거라는 건 아주 오래전부터 예상하던 일이었다.
테온은 도로테아의 힘이 필요하고, 반대로 도로테아는 테온을 좋아하니 두 사람의 약혼은 순조로울 것이다.

‘다 알면서 질투하지 마, 에단 브론테.’

새로운 삶, 도로테아를 살리기 위해 선택한 길이었다.

“들어갈까요?”

모니카는 레스토랑 입구에 멈춰 있는 에단에게 물었다.
그에 에단은 억지로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으로 들어가자 메이드복을 입은 이들이 두 사람을 안쪽으로 안내했다.
화병이 놓인 복도 양옆으로 프라이빗룸이 이어져 있었다.
에단은 방 하나하나를 지날 때마다 신경을 곤두세웠다.
여기 어딘가에 도로테아와 테온이 같이 앉아서 즐겁게 식사하고 있다.

‘……아니지, 어쩌면 도로테아가 다른 일로 왔을지도 모르잖아. 테온이랑 와 있다는 건 내 추측에 불과해.’

방을 하나씩 지나갈수록 그는 요동치는 감정에 자신을 합리화하며 다시 머리를 굴렸다.

도로테아를 보고 싶은 마음과 테온 프리드와 있다는 걸 부정하고 싶은 마음과 도로테아와 테온의 관계를 망쳐놓고 싶다는 욕심과 둘 사이를 이어줘야 한다는 이성, 그녀를 확인하고 싶은 호기심.
영혼은 그의 몸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 같았고, 그는 복도 한가운데 멈춰 섰다.

“에단 님?”

그가 멈춰 선 곳은 어느 방 앞.
‘어느 방’이라고 했지만 그의 촉은 이곳에 도로테아가 있다는 걸 알려주었다.
촉이라기보단 경험적 유추였다.
종업원이 치우기 위해 가지고 나온 빈 애피타이저 그릇 때문이었다.
아마 애피타이저로 새콤한 머스터드소스를 곁들인 과일샐러드와 베이컨 키슈, 버터에그 수프를 내갔던 모양이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의 그릇에는 머스터드소스를 접시에 발라 덜어낸 듯 테두리에 노란 자국들이 있었다.
도로테아는 머스터드가 강한 걸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
베이컨 키슈는 절반 정도 남겼다. 키슈를 먹으면 금방 배가 찬다고 별로 즐기지 않으니까.
버터에그 수프는 깨끗이 비웠다.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수프를 좋아하니까.

도로테아의 접시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모양이어서, 그는 종업원의 손에 딸려 나오는 빈 그릇들을 보며 도로테아를 찾아낸 것이다.
도로테아가 있는 곳을 알아채고 만 에단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정말 당신은 나를 찾지 않는 동안 테온 프리드와 있나……?

“에단 님, 혹시 몸이 안 좋으세요?”

아무것도 모르는 모니카가 그에게 물었다.
모니카가 도로테아의 방문 쪽에 서 있었으므로, 그녀는 에단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요, 모니카 님. 그런데 잠깐 모니카 님 어깨에…….”

에단의 머리가 감정에 따라 움직인 건 순식간이었다.
그는 모니카의 어깨에 붙어 있는 머리카락을 떼어주겠다는 듯 왼손을 뻗었고, 모니카는 진한 향기를 풍기며 매혹적으로 다가오는 에단에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그녀는 도로테아가 있는 방문에 기대었고, 에단의 오른손은 찰칵, 모니카의 어깨 대신 문고리를 잡아 열었다.

“꺄악!”

“이런, 조심하셔야죠.”

문에 기대어 있던 모니카는 경황없이 뒤로 밀려 넘어질 뻔했고 에단은 능숙하게 그녀를 받아내며 방 안쪽을 확인했다.
그리고 빗나가길 바랐던 그의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도로테아는 테온과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단둘이 참 단란하게도.
불청객의 등장에 칼을 뽑으려던 조이가 그의 얼굴을 알아보고 일단 물러섰다.
에단을 발견한 도로테아는 흠칫 몸을 떨었다.
왜? 재밌게 잘 즐기고 계셨으면서.

‘내가 드린 힘이 헛되이 버려지지 않도록 아주 잘하고 계시군.’

에단은 그들을 보며 미소 지었다.

“이런 우연이. 황녀님과 테온 프리드 도련님께서 여기 계시다니.”

“에, 에단. 네가 여기는 어떻게?”

도로테아가 물었다.
에단은 태연하게 자신이 지탱해 준 모니카를 시선으로 가리켰다.

“약속이 있어서요.”

도로테아는 에단의 곁에 선 여인이 모니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그녀가 왜 에단과 있지? 회귀한 에단이라면 그녀와 엮여선 안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을 텐데……?’

도로테아는 의아하다는 듯 눈썹을 구기고 에단을 보았지만 에단은 그녀의 시선을 모른 척하고 모니카를 챙겨주었다.
넘어질 뻔한 것을 겨우 수습하고 옷매무새를 정리한 모니카는 조금 늦게 두 사람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 안녕하세요, 황녀님. 그리고 테온.”

에피스테메에 다닌 모니카는 테온과도 아는 사이인지 익숙하게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테온은 불청객의 방문이 기분 나쁜 듯 입을 다문 채 조용히 그들을, 정확히는 에단을 바라보았다.

“죄송해요. 저희가 단란한 시간을 방해했군요.”

모니카는 테온의 표정을 보고 고개 숙여 사과했다.

“단란한 시간이라기보다는……”

“예, 마침 메인이 나와 한창 즐기던 중이었습니다.”

도로테아가 말하려는데 테온이 에단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말했다.
그러자 에단의 입꼬리가 싸늘하게 비틀려 올라갔다.

“음식이 참 맛있어 보이는군요. 저와 모니카 님은 방금 도착했는데 참…… 기대가 됩니다.”

음식을 칭찬하는 에단의 눈은 도로테아와 테온을 향해 있었다.
도로테아는 에단과 눈을 맞추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에단을 직시하는 것은 오직 테온 프리드였다.

“에단 님도 모니카 님과 식사 맛있게 하시길.”

테온은 불청객을 어서 내보내려는 듯 인사했다.
그에 에단이 고개를 끄덕이며 생긋 웃었다.

“두 분께서도 기억에 남을 즐거운 식사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에단은 테온에게서 눈을 떼어 도로테아에게 묵례하고는 모니카와 함께 방을 나갔다.
* * *
에단이 나간 뒤, 도로테아는 닫힌 문을 빤히 바라보았다.

“에단 님은 인기가 많군요.”

그녀의 시선은 테온이 입을 연 후에야 다시 테이블로 돌아왔다.

“에피스테메 영애들 사이에서도 에단 님의 이름이 자주 오르내리던데. 벌써 데이트 신청을 받았나 봐요.”

테온이 웃었다.
졸업식과 데뷔탕트 한 번으로 자신의 존재를 모두에게 각인시킨 사람.
람파스의 귀족들이 돌려보는 소식지엔 에단에 관한 글이 한 페이지 가득 쓰여 있을 정도였다.

‘데이트…….’

역시 이런 분위기의 레스토랑에 왔다는 건 그런 의미겠지.

도로테아는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지 궁금했다.
하하호호 웃으며 떠들고, 또 맛있는 것도 먹고…….

‘……날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얼마 전까지도 그녀 앞에 눈물 흘리던 에단이 다른 여자랑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설마, 나 지금 질투해?’

자신의 감정을 자각한 도로테아는 포크로 썰어둔 고기 한 점을 쿡 찔렀다.
에단이 다른 여자랑 어울리는 게 무슨 상관이라고? 약혼한 것도 아니고, 연인이 되자고 한 것도 아닌데.
아니다. 이건 질투가 아니라 그의 비일관성과 사랑의 덧없음에 분노하는 것이다.
죽을 때까지 평생 사랑할 것처럼 회귀까지 시키고는 바로 다른 여자랑 데이트하다니, 배신감을 느끼는 게 당연하지.

사랑에 진실성이 없어. 날 사랑했던 게 맞긴 맞아?
도로테아는 스테이크를 소스에 푹 찍어 입에 넣으며 잘근잘근 씹었다.
몇 번 씹자마자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고기에, 도로테아는 입안에 고기 한 점을 더 집어넣었다.
테온은 그녀의 오물거리는 입술을 바라보다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럼 다시 저희 이야기로 돌아와서…….”

테온이 운을 떼자 접시를 괴롭히던 도로테아의 손이 멈췄다.
그녀는 자신이 에단에게만 너무 집중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개를 들었다.
테온은 에단이 나간 뒤 줄곧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진중한 눈빛에 도로테아는 마침내 때가 왔음을 예감했다. 그가 오늘 도로테아를 부른 진짜 이유.

“조이 경, 잠시 자리를 비켜주실 수 있으신가요?”

테온은 뒤쪽에 서 있던 조이에게 정중히 부탁했다.
그러자 조이가 미간을 구기며 테온을 노려보았다.
이곳에 오면서 클라라에게 ‘황녀님을 늑대로부터 지켜라’라는 특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잠깐이면 돼, 조이.”

테온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알기에, 도로테아는 조이에게 잠시 문밖에서 대기해 달라고 부탁했다.
조이는 결국 테온을 한 번 찌릿 노려보고는 자리를 비켜주었다.
조이가 나가고, 단둘이 남은 카로의 방 안.

“그래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야, 테온?”

도로테아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물었다.
어차피 정령에 대해 이야기하리라는 걸 알지만, 두 사람은 하나하나 차근차근 이야기를 쌓아갈 필요가 있었다.

“황녀님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셨죠?”

그러나 테온은 그녀의 예상과 달리 아까의 질문을 상기했다.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대화에 도로테아는 의아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테온은 조용히 나이프를 내려놓고 붉은 입술을 열었다.

“좋아해요, 황녀님.”

그의 한마디가 카로의 공기를 가득 채우며 도로테아를 뒤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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